호빗, 2012 by 미스터칠리


사람을 고생시키는 영화입니다. 상영하는 버젼이 너무 많아요. 인터넷에는 어떤 극장에서 호빗을 봐야 가장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게시글로 넘쳐납니다. 그렇다고 답변이 일관되느냐? 그럴 리가요. 하나같이 '네 취향 나름'이라고들 이야기하고 있으니 머리에 쥐가 날 수 밖에요. 저의 최종선택은 HFR 3D 버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메가박스로 갔는데, 제가 사는 지역 메가박스는 디지털 3D밖에는 상영을 안하더군요. 잠깐 갈등 끝에 오기가 생겨서 롯데 시네마로 이동 하는데, 예약하려고 보니 당일 저녁 7시 30분 표는 모두 매진이라는 게 아닙니까. 주말도 아닌 평일이었는데 말이죠. 전석 매진으로 인해 보고 싶은 시간대에 영화를 못 본건 최근 피에타 이후 처음입니다. 결국 밤 10시 30분 표로 예매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자 새벽 1시를 훌쩍 넘겼더군요. 추위 속에서 택시 잡느라 또 고생좀 했습니다.

징징거림이 길었네요.

아무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3D 무비가 스텝업 3D였기에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3D 효과를 즐길만한 씬들이 꽤 있습니다. HFR 버젼은 확실히 화질의 유려함과 동작의 유연함이 남다르더군요. 48프레임이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영화 종반까지 가서도 어떤 순간에는 마치 월트 디즈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호빗은 반지의 제왕보다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동화적인 판타지죠. 드래곤을 무찌르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난쟁이들의 모험이라니, 스케일이 조금 작아졌고 한 세계를 온전하게 위협하는 적의 등장도 아직입니다. 물론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안에도 애환과 고통이 절절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이 있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 자체는 반지의 제왕보다 훨씬 덜 진지해요. 재미있는 유머들이 더 가미되었고, 특히 주인공인 빌보의 성격은 프로도만큼 심각하지가 못하거든요. 2편에서는 슬슬 빌보의 자아가 성찰을 거듭하며 하나의 로드무비적 성격을 띠게 되지는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지루하다는 평이 꽤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개인적으로는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안에서 이 정도 균형을 이루었다면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소소하고 디테일한 과정들이 없었다면 이후의 액션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냥 취향의 차이라고 얘기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전개가 불필요하게 길고 지루했다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저처럼 필요한 과정이며 그 자체로 재미를 느끼는 팬심 가득한 이들도 있을테니까 말이죠. 반지의 제왕을 이미 본 분들이라면 시리즈와 관계 있는 연결 고리들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트롤 세 마리가 나누는 저녁 식사에 대한 논쟁, 고블린 소굴에서의 전투, 골룸과 빌보의 심리적 경합, 나무 위에서 고전하며 독수리의 극적인 등장을 고대하는 씬 등. 길었던 러닝타임이 이토록 꽉 차게 느꼈던 건 저 뿐일까요? 피터잭슨의 성공적인 귀환에 축하를 보내는 것 역시 저 하나 뿐인가요?

덧글

  • 비로그인 죄송 2012/12/21 09:09 # 삭제 답글

    전 긴 줄 모르고 봤습니다만
    눈이 아팠고요
    아니 이렇게 끝내면 어쩌라는 것이냐아~~~~ 싶긴했습니다
  • 미스터칠리 2012/12/21 18:49 #

    2013년 겨울 2편, 2014년 여름 3편 개봉 예정이라는데 지루한 기다림이 되겠어요..
  • Fanet 2012/12/21 09:20 # 답글

    당신말고 저도 추가좀.. ㅋㅋㅋ 전 커다란 수리 나올때 눈물뿜어져나왔음
  • 미스터칠리 2012/12/21 18:50 #

    반지의 제왕부터 여러모로 도움주는 고마운 독수리사마들.
  • 비로그인죄송 2012/12/21 09:36 # 삭제 답글

    그렇죠
    전 그 독수리들 나오는 장면들 보면
    1,2차 세계대전때 미군(+영국군) 공군이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알수 있는것 같습니다.
  • 미스터칠리 2012/12/21 18:50 #

    ㅋㅋㅋ 재치있는 해석입니다. 날짐승의 역할이 참 중요하죠.
  • 깜장콩 2012/12/21 11:04 # 답글

    저도 좋아하지만 피터잭슨이 간달프 안티라.. 이번에도 마법쓰는 장면들이.. ㅜㅜ
    화장실 가고싶은거 빼곤 만족 스러웠습니다
  • 미스터칠리 2012/12/21 18:51 #

    길었습니다...물이나 콜라는 안가지고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 남선북마 2012/12/21 14:49 # 답글

    반지의 제왕보다 덜 진지한건 아닌것같아요.. 원래 인류평화을 위해 싸우는것보다.. 우리집에 쳐들어온 강도와 싸우는게 더 심각하지요..그래도 드워프들이 종족적으로 워낙 요란법석 낙관적이라 가망없는 원정을 가도 소풍가는것처럼 느껴지긴하데요.
  • 미스터칠리 2012/12/21 18:53 #

    ㅋㅋㅋ 재밌는 멘트입니다. 저 역시 당장 내일 모레 세계 멸망이 목전이라 해도 거실을 활보하는 고작 징그러운 쥐 한마리의 퇴치에 더 심혈을 기울이게 될 것 같군요.
  • 2014/10/14 10:44 # 삭제 답글

    여기에 그냥 모두에게 감사를 게시 정보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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