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스카이폴, 2012 by 미스터칠리


007 스카이폴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하는군요. 극장에서는 벌써 내린지 꽤 된..틈틈히 영화는 봤습니다만 너무 바빠서 리뷰 올릴 시간이 없었네요. 루퍼 등 너무 뒷북이라 좀 민망하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스카이폴은 '왕의 귀환'정도로 평가하고 싶군요. 시작부터 강렬합니다. 아델의 노래와 함께 시작되는 오프닝은 단순한 오프닝의 의미를 넘어서 이 영화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하나의 영상 예술로 기능하고 있죠.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007의 50번째 시리즈가 기획되는 시점에서 마침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플래티넘 가수가 탄생했고, 또 마침 찬사와 호평을 받고 있는 영국 출신의 감독이 이 특별한 시리즈를 맡게 되었으니까요. 여러모로 의미가 있죠. 

전 초창기의 클래식 시리즈 몇 편을 제외하고는(초딩 시절 입 벌리고 본 007 골드핑거의 기억은 지금도 강렬하네요) 007 시리즈가 줄곧 별로였습니다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새로운 본드로 낙점된 후부터는 아주 흥미로운 영화가 되더군요. 특히 50주년을 기념하는 스카이폴은,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본 007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훌륭합니다. 아니, 기억에 남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운위하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예요. 전 스카이폴이 다크 나이트에 견줄 만한 수준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철학적 메시지로 영화의 완성도를 더하는 것은 물론, 아날로그적인 액션 감각, 팬들의 판타지를 유지시켜주는 화려한 해외 로케 등 이런저런 볼거리 느낄거리가 몹시 풍성하거든요.

영국 출신의 샘 멘데스 감독이 스카이폴을 연출하게 된 것은 제작사의 탁월한 선택 아니었나 싶습니다. 샘 멘데스는 제가 이전에도 여러번 '자헤드'를 극찬하며 언급한 바 있는데요, 007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다가오는 새시대에 걸맞는 본드의 사명의식을 감탄이 나올만큼 세련된 방식으로 충분히 조명했어요.

반 세기에 가깝게 시리즈를 이어온 007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영화가 소구해야 할 주제 의식도 함께 종식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를 낳았지만, 새로운 본드와 새로운 시리즈는 그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안이자 해결책이었습니다.
 
특히 스카이폴은 영화 안에서 스스로 조직의 유구한 역사와 본드의 나이, 늙은 신체를 끊임 없이 의식하고 조롱하며 줄곧 함의를 전달하고 환기시키죠. 조직이든 개인이든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그저 구시대 유물로서 새시대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대안이자 방안으로 기능이 가능하며 냉전의 종식이 위험과 보안의 책임에 대한 종식이 결코 아니라는 것. 오히려 지금 시대는 국가보다 한 명의 개인이 더 위협적이며 다수에게 공포를 줄 수 있다는 것. 영화 안에서 장관을 마주하고 연설하는 주디 덴치의 스피치는강렬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화려한 영화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풍부한 영화죠. 터키, 런던, 하시마섬, 상하이, 스코틀랜드 등 전 세계를 아우르며 이탈리안 모델 버금가는 핏의 고급 수트와 코트를 걸치고 5성급 호텔에서 마티니 한 잔, 아리따운 여성과의 데이트 등, 스파이물에 대한 로망과 판타지를 유지시켜주는 한 편 테크놀러지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단련된 신체를 이용하는 액션을(한마디로 개고생이라는 얘기입니다) 제시하며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개성에 관해서는 뛰어난 균형 감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안타고니스트와 프로타고니스트의 대립이 뚜렷하며 이 둘에 얽힌 과거와 관계가 이야기에 아주 매력적으로 작용하죠. 악역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은 완벽한 안타고니스트를 연기합니다. 그가 조직에 가지고 있는 애증과 컴플렉스, M에 대한 변질된 충성심과 배신감, 버림받은 자아에 대한 고뇌와 그로 인한 분노의 표출을 아주 카리스마 있게 소화합니다. 놀라운 인물이에요.

클라이막스에서 주디 덴치와 대치하는 순간은 거의 숨이 막힐 정도죠. 나머지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디 덴치는 이번 시리즈에서 전면에 나서며 새시대 본드의 역할을 강력하게 제안하고 이식시킵니다. 특히 그녀는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기품을 잃는 법이 없죠.

영화의 마지막, 황량하고 거칠고 메마른 스코틀랜드의 대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은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주디 덴치는 그 외로운 성의 여왕이며, 본드는 그녀를 지키는 기사와 같습니다. 그리고 하비에르 바르뎀은 성의 함락를 기도하는, 여왕의 버림받은 자식이겠고요. 어머니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슬픈 아들, 그리고 그를 저지하고자 하는 또 다른 아들. 이 관계에서 탄생하는 치밀한 대립을 보며 저는 이 영화의 완성도를 극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 더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본드는 계속될 게 분명하더군요. 냉전의 종식과는 상관 없이 말이죠.

덧글

  • 잠본이 2012/12/16 19:55 # 답글

    주디덴치씨가 정말로 영국여왕 연기한 경력도 있는 거 생각하면 다분히 노린 전개가 아닌가 싶더군요.;;
  • 미스터칠리 2012/12/21 19:29 #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미세스 브라운 등 참 한 번 하기도 힘든 여왕을 많이도 하셨드랬죠 ㅎㅎ 그녀의 기품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하지만 ㅋㅋ
  • 퐁퐁포롱 2012/12/16 21:49 # 답글

    오프닝은 정말 두고두고 봐도 또 보고 싶을만큼 멋지더라구요, 아델의 목소리와 정말 멋드러지게 어우러져서 감탄에 감탄! 제가 본 영화 오프닝 중 최고의 오프닝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ㅎㅎ
  • 미스터칠리 2012/12/21 19:29 #

    지금까지 카지노 로얄 오프닝을 역대급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카이폴에게 자리를 내줘야할듯 싶습니다..ㅋㅋ
  • 2012/12/19 10: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21 19: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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