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2012 by 미스터칠리


열심히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광해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개봉 당일 피에타와 연달아 봤는데, 피에타가 선사한 우울한 스트레스가 광해로 인해 조금이나마 회복이 되더군요. 네, 광해는 관객들을 꽤 웃겨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서사성을 간직한 드라마와 대중적인 유머 코드를 모두 놓치지 않은 꽤 매끈한 수작입니다. 사실 소재의 신선도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죠. 암살의 위협을 느낀 왕이 자신과 꼭 닮은 인물을 찾아 허수아비를 세운다는 내용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가케무샤를 비롯, 이전에도 많이 이야기되었던 소재입니다. 하지만 광해의 장점은 이 플롯을 기시감으로 채우기보다는 영리한 호소와 탁월한 문법으로 관객들의 감정적 호응을 유도하는 똑똑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병헌의 연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지고 잘생긴, 진지함 이외의 표정이라고는 찾기 힘들 것만 같은 그 생김새로 어떻게 천한 광대의 익살과 재치를 표현하려나 했는데 이게 왠걸요, 그게 되더군요. 이병헌은 영화의 전체분량에서 광해를 3할, 하선을 3할, 임금인척 하는 하선을 4할 연기하는데 이 스펙트럼에서 그는 흠 잡을 게 없습니다. 이병헌 외의 연기자들 호흡도 손색이 없더군요. 한효주는 전체로 두고 보면 사실 그렇게 존재감이 크지는 않습니다만, 관객이 한 번은 더 미소짓게 할 이 영화의 멜로적 소임에서 자기가 맡은 바를 다 합니다. 심은진도 아이의 천진함과 너무 많은 고생을 겪은 애늙은이의 캐릭터를 적절히 오가며 잘 소화했으며, 무엇보다 류승룡은 이병헌과 굉장한 호흡을 자랑하더군요. 줄거리 전개상 한 씬 안에서 두 사람이 같이 공모를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데, 두 사람이 맡은 뚜렷한 캐릭터가 아이러니한 배경 속에서 충돌되는 것들이 아주 재밌습니다. 

극은 드라마와 코미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그 와중에도 텐션을 놓치는 않습니다. 저잣거리에서 남을 웃기는 재주로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 갑자기 한 나라의 왕, 그것도 유교적 사상에 엄격한 조선의 왕이 된다니요. 웃길거리들이 얼마나 많겠습니다. 그렇게 명민한 코미디로 웃음을 주다가도, 너무 늘어질 것 같다 싶으면 상황에 대한 위험을 상기시키며 긴장이 압박하고, 긴장이 너무 숨통을 죄는 게 아닌가 싶으면 다시 코미디가 널을 뜁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후반부로 가면서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며 드라마틱한 전개를 선보이다가 마지막에 절정으로 빵 터뜨려주죠. 아주 기민하고 영리한 영화예요. 

이 영화의 출발점이 결국은 '우리네 사정을 잘 아는 백성이 나라의 임금이 된다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을때, 예법에 경도되어 사안을 외면하는 왕이 아닌 본질에 집중하여 백성을 우선하는 어진 임금, 관객이 기대하고 있을 바로 그런 임금에 대한 판타지를 아주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그것을 거의 성취시켜줄 듯 말 듯 아쉬움을 자아내며 대중을 쥐고 흔들어댑니다.

결과적으로 광해는 볼 만한 영화이고, 눈에 띄는 단점이 없는 대중 영화입니다.

덧글

  • fornw1040 2012/10/04 09:49 # 답글

    이병헌의 능청스런 연기에 빵빵 터졌죠 ㅋㅋㅋ
  • 미스터칠리 2012/10/06 22:36 #

    이만큼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는 건 국가의 복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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