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아이, 2012 by 미스터칠리


아아, 9월 19일 관람한 영화 늑대아이에 대한 평을 이제야 씁니다만, 지금도 이 애니메이션을 떠올리자니 가슴 한 켠이 짜르르- 울리는 기분이 드는군요.

저는 이 애니메이션을 진지하게 극찬할 생각입니다. 최근 몇 해 동안 기억될만한 일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상황에서, 늑대아이는 훌륭한 내러티브에 잔잔한 감동이 어우러진 높은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래를 엿 본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 동시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호소다 마모루라는 장차 미래의 거장을 예고하는 걸출한 감독의 탄생을 목격한 것 같다는 감상입니다. 

늑대 아이는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육아 이야기인 동시에, 한 소녀와 한 소년 각각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며, 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성장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나와 '그'가 만나서 연애를 하게 되는 과정이 꽤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어 기분좋게 선선한 멜로의 냄새도 짙게 베어있구요. 이 종합선물세트같은 애니메이션은 어쨌든 가족이라는 테마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보편적이거나 만만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극의 주인공인 두 남매가 늑대 인간이거든요. 감정이 격해지면 늑대로 변하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제대로 키우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재미있는 건 판타지의 영역이 지배하고 있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제시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관객들에게 꽤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두 늑대아이를 육아하는 과정은 걱정과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아이가 아플 때 소아과에 진찰을 맡겨야 할지, 아니면 동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지. 시청에서 온 공무원들이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때 그 조마조마함이라든지. 이런 디테일한 설정들이 관객들의 공감을 사며 극에 몰입도를 더합니다.   

늑대아이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은 이 작품이 아주 꼼꼼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공간과 배경, 그리고 음악과 소리에까지 이야기가 내포하는 것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그'가 하나와 처음 만나 신혼을 이루는 공간의 배경에서는 끊임 없는 소음들이 들려옵니다. 거리를 걷는 이들의 잡담 소리, 식당에서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 특히 '그'가 하나에게 늑대인간임을 고백하다 실패하는 장면에서는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클락션을 눌러대고 듣기 거북한 엔진 소리를 내며 그들 곁을 지나갑니다. 이 도시의 소음들은 결국 하나가 이 공간 안에서 맞이하게 될 어떤 비극과 고통들을 암시하는 것이겠죠. 그런 소음들은 하나가 아메와 유키를 데리고 농촌으로 이사를 가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져요. 인간의 우위에 있지 않고 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그 곳에서 듣기 싫은 도시의 소음들은 우리의 주인공들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감각적이고 유려한 그림들, 배경들, 그 미술적 성취는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다루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탁월한 감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산과 들, 하늘, 눈, 비, 바람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만화는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그리고 호소다 마모루의 자연에 대한 표현은 아이들의 성장통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거센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다가오면서 아이들의 성장통은 절정에 달하죠.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늑대아이는 메인 플로과 서브 플롯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왜 좀 더 인간 여자 아이답지 못한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유키와 '왜 좀 더 늑대의 본성대로 살아갈 수 없는가'의 고민이 시작된 아메, 두 남매는 각자의 방법으로 성장을 거듭하며 결국에는 각자의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의 선택,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포기와 고통 역시도 서로 다른 성격의 것들이며, 두 남매의 결정이 무엇이든간에 옳고 그름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늑대아이는 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는 도시에서 인간의 삶을 살 것이며, 한 아이는 자연에서 늑대의 삶을 살겠지만 그것 역시 그대로 나쁘지는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도 늑대도 결국은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자연의 일부이니까요. 영화의 종반부에서 유키가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는 씬, 아메가 산으로 떠나는 장면이 번갈아 제시되면서 두개의 절정이 연달아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 제 감정도 벅차오르더군요. 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끌고 가는 방식이 아주 세련되고 훌륭했습니다. 감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한 마디로 저는 이 장편 애니메이션에 그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호소다 마모루가 이루어 낸 뜻 깊은 성과에 주목할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습니다.

   

덧글

  • 2012/10/01 18:50 # 답글

    크흑 이거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꼭 보고 싶은데 시간이 있을지ㅠㅠ
  • 미스터칠리 2012/10/01 22:53 #

    시간을 쪼개고 쪼개시더라도 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미술이 환상적이라서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접하는 늑대아이는 거의 죽음이더군요...
  • fornw1040 2012/10/04 09:52 # 답글

    에반게리온 파 이후로 볼만한게 없었는데 이건 봐야겠군요.^^
  • 미스터칠리 2012/10/06 22:36 #

    정말 추천입니다.
  • 2014/10/14 10:46 # 삭제 답글

    말을 게시하는 것은 너희들을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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