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곰 테드, 2012 by 미스터칠리


19금이 아닙니다. 19곰입니다. 세스 맥팔레인 감독의 19곰 테드는 동화적 상상력에 발칙함을 부여한 재기발랄한 코미디 영화예요. 일단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년이었던 존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귀여운 테디베어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네가 진짜 살아움직였으면 좋겠어.' 소년의 간절한 기도는 설명하기 힘든 마법적 힘을 불러일으키고, 다음 날 곰은 소년에게 인사를 합니다. '안녕? 네 기도 덕분에 나도 생명을 가지게 되었어. 우리 베스트 프렌드가 되자'.

네 여기까지는 꽤 아름다운 우화입니다. 하지만 이 가슴 벅차고 순수한 동화의 이미지는 딱 초반 10분까지. 앞서 말씀드렸던 발칙함이 이제 영화의 나머지 러닝타임을 지배하기 시작하죠. 말 하는 곰인형 테드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는 별명과 함께 매체를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며, 각종 가쉽의 중심에 있는 잘 나가는 셀러브리티가 됩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몇몇 인물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맥컬리 컬킨이나 에드워드 펄롱이 그러했듯이, 아직 어린 나이에 지나친 유명세를 얻은 아역 배우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잘 아실 겁니다. 어린 곰인형 테드 역시 마찬가지였죠. 신기함은 잠깐이고 대중들은 쉽게 질리며 스타는 단숨에 잊혀집니다. 테드는 별 다른 직업 없이 베스트 프렌드 존에게 빌붙어 살며, 매일같이 마약을 하고 집 안으로 창녀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거나 엉뚱한 사고들을 치죠(이게 참, 쓰면서도 곰인형한테 적절한 설명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영화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ㅋㅋㅋ).

그리고 존은 여전히 그런 테드와 베스트 프렌드 관계를 유지하며,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테드와 함께 보냅니다. 함께 대마초를 피우고, 함께 철 지난 히어로 드라마인 '플래시 고든' DVD을 몇 번이고 돌려보고, 함께 파티를 열고, 둘만이 공유하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 댑니다. 그리고 존의 여자친구인 밀라 쿠니스는 지난 4년 간 그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테드가 존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하죠. 

여기서부터 갈등은 시작됩니다. 왕따로 지내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말 그대로 마법처럼 다가와준 베스트 프렌드 곰인형과, 나를 사랑하고 내가 발전할 수 있게 독려해주는 여자친구 사이에서 존은 방황하기 시작해요. 살아왔던 것처럼 테드와 우정을 유지하자니 여자친구가 떠나버릴까 두렵고,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집중하자니 단 하나의 친구였던 테드에게 소홀해질 수 밖에 없거든요. 때문에 19곰 테드는 약간은 유치한 성장 무비의 성격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과거의 TV 쑈에 열광하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같은 어른이, 친구와 연인의 관계들 속에서 스스로를 조율하며 어떻게 진정한 어른으로 재탄생하는지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매끈하게 잘 만든 코미디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디어와 유머에 대한 감각만큼은 꽤 뛰어납니다. B급 무비를 지향하는 듯한 편집 기법이 종종 튀어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약이라도 빤 것'같습니다(실제로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부분들은 거의 다 캐릭터들이 약에 취해 있을 때입니다 ㅋㅋ). 특히 존이 '우리집에 플래시 고든이 왔다'는 테드의 전화를 받고 그의 파티에 달려가는 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엉뚱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고든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존과 악을 무찌르기 위해 달려가는 고든의 tv쑈 장면이 짧은 쇼트로 번갈아 반복되면서 유치찬란한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관객들이 크게 호응하더군요. 파티에서 고든과 존이 첫만남을 가지는 씬, 옆집에 사는 중국인을 드라마 속의 악역 '밍'으로 오인하여 벌어지는 격투씬 등, 이 영화의 개성과 감성에 기인한 난잡한 상황들이 꽤 웃음을 유발합니다.   

다만 이 영화가 제시하는 유머의 8할 이상이 지극히 미국식 농담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은 국내 관객들에게 단점으로 작용할 것 같군요. 미국 대중 문화가 담보하는 일정한 코드에 관심이 없거나, 80년대 TV 시리즈와 헐리웃 배우들에 대한 가쉽, 그리고 지금의 트렌드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기관총처럼 매 씬마다 쉴 새 없이 쏘아대는 테드의 농담은 그냥 지루한 텍스트에 불과하겠죠. 가라오케씬, 남부 출신의 금발 미녀들의 이름, 혹은 저스틴 비버나 케이티 페리에 대한 농담들이 대표적일 것 같군요.

그 외에도 열심히 유지하던 테드의 그 발칙함이 종반에 접어들어서는 역시 무수한 기시감을 유발하는 익숙한 플롯으로 대체되면서 다시 초반의 아동틱한 우화로 종결된 것에는 꽤 불만이 있습니다. 아이들 장난감 하라고 만들어 놓은 곰인형이 독한 화장실 유머를 내뱉으며 대마초를 빠는 30대 아저씨가 됐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무기인데, 종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이 재밌는 아이디어에 서서히 힘이 빠지고 90년대 크리스마스 특선 아동 영화처럼 익숙한 클리셰로 마무리 됩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테드는 농담하기를 멈추지는 않지만요. 어쨌든 미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케이티 페리가 얼마나 라이브를 못하는지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19곰 테드는 볼 만한 코미디입니다.

덧글

  • no pain 2012/10/01 03:03 # 답글

    코메디에만 집중한 나머지 좀 난잡하고 추잡한 감이 있어서 보다가 영화관을 나온게 안자랑...
  • 미스터칠리 2012/10/01 13:43 #

    질펀한 화장실 유머가 불편한 분들에게는 사실 추천할만한 영화는 아니죠 ㅋㅋ
  • 크리슈나 2012/10/01 22:36 # 답글

    안그래도 저스틴 비버와 케이티 페리는 여기서도 까이...는 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못 듣고 또, 자막이 뭉갠 것도 더 있었을 것 같아요. 전 아무래도 여자 입장에서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참... 여친이... 보살같더라구요.
  • 미스터칠리 2012/10/01 22:54 #

    말하는 곰인형만큼이나 놀라운 캐릭터가 바로 존의 여자친구 아닌가 싶습니다. 밀라 쿠니스는 여기서 인내심이 거의 성모 마리아급이니까요 ㅋㅋㅋ
  • 2012/10/01 23: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0/01 23: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Feelin 2012/10/02 02:09 # 답글

    빵빵 터지는 걸 기대했었는데, 그냥 거기서 끝난 것 같아서 아쉬웠죠. 그나저나 테드가 존하고 싸울때는 박력이 넘치는데, 납치당할땐 왜 혼자서 그렇게 난리 못치고 겁을 먹었는지 그게 약간 의문이었습니다.
  • 시프 2012/10/02 04:54 #

    그건 아마 처음 본 사람과 27년[맞나?;]동안 같이 산 친구의 차이일거라고 생각합니다.

    27년동안 같이 뻘짓 해온 친구가 만만할까요 아니면 처음 본 이상한 사람이 만만할까요?<<<
  • 미스터칠리 2012/10/02 12:47 #

    ㅋㅋㅋㅋㅋ 존과 싸우는 씬에서는, 마법 걸린 곰인형에게는 실제 '곰'의 기운 역시 부여된 것인가 잠시 고민했습니다. 맥 없이 어린아이한테 귀를 뜯길때는 이거 뭐야 했어요 ㅋㅋ 애초에 진지한 영화가 아니니 코미디를 위한 맥락과 절정을 위한 맥락을 따로 구분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개연성에 의문이 남기는 하지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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