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가는 길 by 미스터칠리


이것은 수 년 전의 기록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인을 만나러 공주에 갔다.
센트럴 터미널의 신세계 백화점에 들러 그에게 선물할 한과를 품에 꼭 안은 채로.

꽃처럼 별처럼 고운 시를 쓰는 감성시인,
이전에도 몇 차례 뵌 일이 있었지만 그의 거처로 찾아가는 건 처음이다.

공주 터미널에서 내려 H감독님과 간단히 중국집에서 허기를 달래고,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는 시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담하고 잘 가꾸어진 뜰 사이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조 건물이 표표하게 자리잡고 있다.
문 앞에서 전화를 드렸더니 시인 부부가 나란히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한다.

- 먼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차부터 들게.
- 네, 좋습니다. 선생님

그는 공주시에서 마련한 문학관에서 관장을 맡으며 그 곳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일본식 가옥은 세월의 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결코 쇠락하거나 나태해보이지 않았다.





문인들이 모여 시상을 논하고 담소를 나눈다는 이 곳은,
그의 취향과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있었다.

시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두통을 호소했다.
그는 오전에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오는 길이라 했다.

그는 영화가 제공하는 피비린내와 번민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중이라 했다.
시인다운 감수성이었다.

우리는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대차이가 무색하게 조금의 지루함이 없었다.
그는 타고난 작가일뿐만 아니라 타고난 스피커였다.

싸인을 부탁한 지인들의 책 몇 권을 들고갔더니,
어느 것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만 같다.
붓펜을 꺼내 정성스레 싯구를 적고,
그 옆에 고운 풀꽃과 난도 쳐주시고,
덕담까지 적는다.

대화와 배움의 시간을 마치고
그는 문학관의 구석 구석을 손수 안내해주었다.




나무로 만든 낡은 복도에 발을 옮기자 '끼익'하는 소리가 적막한 문학관에 울려퍼진다.
나는 괜히 움츠러들어 움직임을 조심히했다.

문득 그는 창 밖의 흰 들꽃들에 시선을 던졌다.

"처음에는 돌담 위에만 피어있었지.
그런데 저것들이 어느 순간 담 밑으로 몸을 던지지 않겠어.
그래서 지금은 위 아래 저렇듯 흐드러지게 피었다네.
사람은 죽으려고 몸을 던지지만,
꽃들은 살려고, 자손을 하나라도 더 남기려고 몸을 던진다네."

사람은 죽기 위해 몸을 던지지만,
꽃들을 살려고 몸을 던진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는 우리에게 풍금 연주, 그리고 노래까지 선사했다.

아래 동네에 사는 친구가 자신이 쓴 시에 음률을 달아주었단다.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목소리는 20대 젊은이처럼 천진하고 말간 기색이 묻어났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잠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정신없는 서울의 한 복판에서 사람들과, 서류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공주라는 적요로운 도시의 한 문학관에서 시인을 만나 꽃과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들려주는 풍금소리에 취해있었다.



 
우리는 정원으로 나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나와서 잡초를 뽑아준다고 했다.

한 송이, 한 송이, 이름모를 꽃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어찌나 조심하고 섬세한지,
세상에 다시 없을 귀중품을 다루는 것만 같았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의 시 한 편이 생각났다.

- 선생님이 쓰신 시와 꼭 같네요. '꽃들아 안녕'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셨잖아요.
꽃들에게 인사할때 '꽃들아 안녕!' 전체 꽃들에게 한 번에 인사하면 안된다며...
꽃송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해야한다고요.

- 그걸 어떻게 기억을 하고 있어?

시인이 수줍게 웃는다.


(개량한복을 입은 나와 중절모를 쓴 시인)


집과 뜰을 오가며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이 선선했고, 문학관을 둘러싼 도시는 퍽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우리는 시인에게 인사를 고하고 역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귤과 만다린, 탠저린이 고루 섞인 오묘한 주황빛이 공주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시인과 나눈 대화들을 곱씹으며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공주에서 시인과 함께 보낸 반나절은 정서적 사치이자 감성의 호사였다.
그는 우리에게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고,
꽃들을 소개하고,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는 문학계,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치있는 입담으로 전해주었으며
그가 깨달은 삼라만상의 이치 일부를 우리에게만 비밀스럽게, 아주 살짝 귀뜸해주었다. 

나는 저 문학관이,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 시인의 고운 감수성과
고운 글들이 이 세상에 오래오래 보존되기를 석양 앞에 기도했다.

나는 다시 복잡하고 어지럽고 현란하고 발랄하고 절망스럽고 개탄스럽고
폭력과 상처와 회복과 희망이 상호로 작용하고 모두가 소리높여 자기를 봐달라고 애원하지만
끝끝내 외면하고 마는, 그 작은 지옥같은 서울로 돌아가 삶을 꾸역구역 연명하겠지만

이 날 누린 사치와 풍요는 그 후 오랜 시간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mouse 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