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Oddity by 미스터칠리


요새 다시 그 꿈을 꾼다.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나는 전경식 우주복을 입고 우주 공간 어딘가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저 멀리 푸른별 지구가 보이고, 지구에서는 마치 여러가지 라디오 채널이
한 꺼번에 들리는 듯한, 음악소리, 싸움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 대화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린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유리되어 있음에 안도감을 느끼지만,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점점 더 작게
잦아들었음을 깨닫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이미 나는 너무 지구에서 멀어져버린 후다.
그렇다 이제 나는 밸브를 끊고 우주의 미아가 된다. 광활하고 아늑하며 적막만이 흐르는 그 곳으로.
태초에 내가 있던 곳, 내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던 곳으로.

청담동, 결혼식, 그리고 합성된 캐릭터의 비애 by 미스터칠리



업무로 엮이게 된 지인 결혼식이 있어서 강북에서 청담동까지 1시간 30분이 넘게 지하철에 짜부가 되어 왔다. 내가 공황장애 때문에 대학시절 친했던 E와 M, 그리고 같이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공동대표들의 결혼식도 모르쇠한 희대의 썅놈인데...입에 풀칠하는 문제가 달리니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지고 공황장애도 극복하는 묘기가 발휘된다.


공포와 혼돈의 왕십리역 경의중앙선.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지하철을 들 때마다 드는 생각
'나는 불행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압구정역.



웨딩홀 입성하기 전 알프라졸람 한 알 먹으며 심신 다스리기.
압구정 스타벅스에서 관찰한 청damm 피플들 특징

1. 세상 도도하거나 나른한 표정임
2. 귀에 다들 에어팟 끼우고 있음
3. 고급지게 옷 잘입는 패피들 많음
4. 여자들 예쁨


오늘의 주인공은 금융권에서 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였다. 나는 결혼식장의 세련되고 화려한 분위기에 한참 압도당했고, 옷차림에 조금 더 신경쓰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셀린느와 버버리의 플래그십 스토어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고급 가든에서 치뤄지는 하우스풍의 웨딩. 청첩장이 없으면 입장이 불가능했고 하객들은 하나같이 부유해보였다. 외국인들도 많았다. 이름이나 재료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중해풍의 샐러드와 지극히 장식적이고 호사스러운 디저트들이 서브되었다. 미슐랭 셰프가 커스터마이즈한 요리를 내놓는단다. 하객이 원한다면 할랄푸드나 베지터리언식도 가능하다고.

이 중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고 온몸이 찌그러져서 온 사람은 나뿐인 것처럼 보였다. 거북이 등딱지같은 이스트팩의 백팩을 메고 온 사람도. 굳이 거대한 백팩을 메고 온 것이 좀 머쓱해졌다. 가방에는 식이 끝나고 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 가져다줄 속옷이 들어있었다. 다들 주름 한 점 없는 매끈한 수트와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손과 등은 가벼웠다. 그들은 모든 짐을 자신의 차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주차 중인 하객들의 차는 독일 3사와 재규어, 벤틀리, 포르쉐같은 차들이 보였다.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후다닥 해치우고 시끄러운 뷔페에서 대화없이 꽁꽁 언 연어를 우물대는, 그런 결혼식이 아니었다. all day wedding이었다. 이 커플만을 위해 이 공간의 모든 인프라와 인력이 투입 되는 것이다. 종일 여기에서 술을 마시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감상하고, 흥이 나면 나와서 가볍게 춤도 추는. 하객들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스태프들은 연령은 다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었으며 세련된 매너를 자랑했다.

이 일련의 고오급 경험 속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바로 웨딩 케이크를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어떤 결혼식에서도 웨딩 케이크를 대접받아본 기억이 없다. 신랑과 신부가 세레모니할 때 쓰던 웨딩케이크가 큼직한 조각으로 테이블마다 서빙되었는데, 포크로 자를 때부터 그 어떤 저항 없이 사르르 잘리는 것을 보며 범상치 않은 케이크임을 직감했다. 마치 공기를 가르는 것과 같은 감촉이었다. 생크림은 입 안 넣자마자 한없이 가볍게 흩어졌고 우유의 풍미만 남았다. 제누와즈는 촉촉하고도 바닐라향이 풍부했다.

예식이 마무리 되고 이제 막 부부가 된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길, 하객들의 손에 생화 꽃잎이 든 바구니가 주어졌다. 사람들은 그들의 미래를 축복하며 환호성과 함께 꽃잎을 뿌렸다. 웃음소리와 폭죽소리가 뒤섞여 사람들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진짜 파티는 이제부터 시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재즈밴드의 라이브 연주가 공간을 적시는 가운데 모두는 술에, 그리고 행복과 쾌락에 젖어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결혼식을 이렇게 하는구나. 그러니까 나는, 바즈 루어만의 영화 한 복판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모든 체험들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찰나의 무엇이었다.

이 품위있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웨딩은 하객들에게도 뭔가 모를 고양감을 선사하는 모양이었다. 모두 지나칠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고독하게 혼자 앉아서 한치 샐러드를 우물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하던 와중, 몇몇의 아는 얼굴들이 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나를 자기들의 무리에 소개해주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마치 그들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인 척 행동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지독하게도 절망적이고 달콤한 경험이었다. 나는 스스로도 감탄할만한 재치있는 농담을 만들어 여자들에게 던졌다. 아아, 내 말 재간에 웃어주는 낯선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얼마나 듣기 좋은가. 물론 그녀들의 어깨에 메달린게 생로랑과 샤넬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자신 있게 들이대볼 수도 있었을텐데. 참 못났다. 그들은 파티가 끝나면 예식장 바로 옆에 있는 10꼬르소꼬모에 쇼핑을 갈 거라고 했다. 니트 하나가 내 한달치 월급에 육박하는 그 곳. 그리고 나는 이 떠들썩한 한바탕의 쇼가 끝나고 나면 다시 지하철에 구겨져서 아픈 아버지에게 BYC에서 구입한 순면 100퍼센트의 속옷 한 묶음을 가져다드리고, 강을 건너 손바닥만한 원룸에서 라면을 끓일 것이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에드 시런의 beautiful people를 들었다. 힙하고 아름답고 부유한 사람들 사이를 거니는, 마치 그림판으로 잘라서 붙여넣기 한 것처럼 그 공간과 조화되지 않는 평범한 남녀. 좀 전의 나와 같았다. 나는 스스로가 B급 영화의 그래픽 담당이 매우 조악한 솜씨로 잘라서 붙여넣기 한 캐릭터같다고 느꼈다.

다만 나와 이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들과 다른게 있다면, 이들은 그들처럼 되는 걸 경계하고 두려워했지만 나는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 걸 두려워하고 경계한다는 것이다.

(2019)​

공주 가는 길 by 미스터칠리


이것은 수 년 전의 기록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인을 만나러 공주에 갔다.
센트럴 터미널의 신세계 백화점에 들러 그에게 선물할 한과를 품에 꼭 안은 채로.

꽃처럼 별처럼 고운 시를 쓰는 감성시인,
이전에도 몇 차례 뵌 일이 있었지만 그의 거처로 찾아가는 건 처음이다.

공주 터미널에서 내려 H감독님과 간단히 중국집에서 허기를 달래고,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는 시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담하고 잘 가꾸어진 뜰 사이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조 건물이 표표하게 자리잡고 있다.
문 앞에서 전화를 드렸더니 시인 부부가 나란히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한다.

- 먼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차부터 들게.
- 네, 좋습니다. 선생님

그는 공주시에서 마련한 문학관에서 관장을 맡으며 그 곳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일본식 가옥은 세월의 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결코 쇠락하거나 나태해보이지 않았다.





문인들이 모여 시상을 논하고 담소를 나눈다는 이 곳은,
그의 취향과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있었다.

시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두통을 호소했다.
그는 오전에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오는 길이라 했다.

그는 영화가 제공하는 피비린내와 번민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중이라 했다.
시인다운 감수성이었다.

우리는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대차이가 무색하게 조금의 지루함이 없었다.
그는 타고난 작가일뿐만 아니라 타고난 스피커였다.

싸인을 부탁한 지인들의 책 몇 권을 들고갔더니,
어느 것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만 같다.
붓펜을 꺼내 정성스레 싯구를 적고,
그 옆에 고운 풀꽃과 난도 쳐주시고,
덕담까지 적는다.

대화와 배움의 시간을 마치고
그는 문학관의 구석 구석을 손수 안내해주었다.




나무로 만든 낡은 복도에 발을 옮기자 '끼익'하는 소리가 적막한 문학관에 울려퍼진다.
나는 괜히 움츠러들어 움직임을 조심히했다.

문득 그는 창 밖의 흰 들꽃들에 시선을 던졌다.

"처음에는 돌담 위에만 피어있었지.
그런데 저것들이 어느 순간 담 밑으로 몸을 던지지 않겠어.
그래서 지금은 위 아래 저렇듯 흐드러지게 피었다네.
사람은 죽으려고 몸을 던지지만,
꽃들은 살려고, 자손을 하나라도 더 남기려고 몸을 던진다네."

사람은 죽기 위해 몸을 던지지만,
꽃들을 살려고 몸을 던진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는 우리에게 풍금 연주, 그리고 노래까지 선사했다.

아래 동네에 사는 친구가 자신이 쓴 시에 음률을 달아주었단다.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목소리는 20대 젊은이처럼 천진하고 말간 기색이 묻어났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잠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정신없는 서울의 한 복판에서 사람들과, 서류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공주라는 적요로운 도시의 한 문학관에서 시인을 만나 꽃과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들려주는 풍금소리에 취해있었다.



 
우리는 정원으로 나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나와서 잡초를 뽑아준다고 했다.

한 송이, 한 송이, 이름모를 꽃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어찌나 조심하고 섬세한지,
세상에 다시 없을 귀중품을 다루는 것만 같았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의 시 한 편이 생각났다.

- 선생님이 쓰신 시와 꼭 같네요. '꽃들아 안녕'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셨잖아요.
꽃들에게 인사할때 '꽃들아 안녕!' 전체 꽃들에게 한 번에 인사하면 안된다며...
꽃송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해야한다고요.

- 그걸 어떻게 기억을 하고 있어?

시인이 수줍게 웃는다.


(개량한복을 입은 나와 중절모를 쓴 시인)


집과 뜰을 오가며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이 선선했고, 문학관을 둘러싼 도시는 퍽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우리는 시인에게 인사를 고하고 역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귤과 만다린, 탠저린이 고루 섞인 오묘한 주황빛이 공주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시인과 나눈 대화들을 곱씹으며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공주에서 시인과 함께 보낸 반나절은 정서적 사치이자 감성의 호사였다.
그는 우리에게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고,
꽃들을 소개하고,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는 문학계,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치있는 입담으로 전해주었으며
그가 깨달은 삼라만상의 이치 일부를 우리에게만 비밀스럽게, 아주 살짝 귀뜸해주었다. 

나는 저 문학관이,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 시인의 고운 감수성과
고운 글들이 이 세상에 오래오래 보존되기를 석양 앞에 기도했다.

나는 다시 복잡하고 어지럽고 현란하고 발랄하고 절망스럽고 개탄스럽고
폭력과 상처와 회복과 희망이 상호로 작용하고 모두가 소리높여 자기를 봐달라고 애원하지만
끝끝내 외면하고 마는, 그 작은 지옥같은 서울로 돌아가 삶을 꾸역구역 연명하겠지만

이 날 누린 사치와 풍요는 그 후 오랜 시간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


mouse 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