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의 비좀비 지향 by 미스터칠리


1. 좀비

양재역은 아침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 신분당선에서 3호선으로 빠르게 환승하려는 이들 수십이 앞다투어 뛰어가는 것이다. 잘 적응 되지 않는 광경이며 세기말의 정서같은 것들을 맛보기도 한다. 얼핏 보면 고지라에게 쫓기는 시민들같기도, 불시의 사고현장에서 피하려는 몸부림같기도, 혹은 산 자의 피냄새를 맡은 좀비같기도. 좀비. 그렇다. 우리는 모두 좀비다. 삶이라는 폭군이 내린 부역의 의무에 시달리다 어느새 그것이 통증인지 쾌락인지, 압력인지 욕구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몫을 꾸역꾸역 해내는 것에만 목적을 둔 좀비들이다.  

판단할 수 없을만큼 사고와 감각을 정지시키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머리와 감정을 비운 채 지하철로 몸을 밀어넣어야지 버틸 수 있다.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가난과 질병과 각종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다. 


1. L

현장답사 때문에 근 1년 만에 테헤란로에 갔다. 강남은 워낙 상처 입은 기억이 많아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동네 중 하나인데, 아아. 결심만큼 허망한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가 일구는 내 인생임에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실로 협소하다는 걸 깨닫는 최근이다. 이렇게 조금씩, 좀비화가 진행되는 것일테다.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깔끔하고, 위압적이고, 세련됐지만 동시에 약간의 박탈감을 주는 이 동네. 

S멀티캠퍼스 고층에 위치한 사무실은 뷰가 기가 막혔다. 적당한 방임과 여유, 위트가 느껴지는 근무 환경. 직원이라는 말보다는 크루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법한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생기가 넘쳤고, 화이트보드에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언어와 수식들이 요란했다. 세상을 바꾸는 천재들, 그들을 향한 모 언론사의 찬사가 생각났다. 

L사의 사업총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을 훑으며 눈알을 굴리자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한다.

- 대표님은 외국에 계세요.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한국을 떴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천재적인 발상과 기행으로 늘 언론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을 실제 보고 싶은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호기심에는 존경심 또한 일부 기여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사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보면 지나온 자취에는 항상 새로운 커뮤니티와 긍정적 변화가 창출되었으니까. 세상에 몇 되지 않는 非좀비인 그는 후대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 젊고 활력 넘치는 사업총괄은 솔직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짓궂은 질문에도 매사에 당당함을 잊지 않았다.

- 구글에서 받은 돈은 어디에 쟁여두신 건가요? 정말 상금이 필요하세요?
- 그 돈은 목적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손을 못 대고 있어요. 저희가 외형적으로는 거대해 보이지만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조직입니다. ‘인간의 선한 의지에 기대지 않는다.’ 우리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사람을 향한 수 많은 아이디어와 서비스가 있었지만 대부분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도태된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행위자의 선한 의지에 기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달성하고 싶은 goal이 있다면 구성원에게 정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저희가 가까이는 국내의 산골지방부터 멀리는 호주나 미국까지 사업을 전개하는데, 이 친구들에게 오로지 네 자신을 헌신하라고, 시간과 노력과 돈을 감당하는 건 모두 너의 몫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지금처럼 확장될 수 있었을까요? 조금이나마 인센티브를 나누고, 계속해서 수익 창출 방안을 모색해야죠. 때문에 기업과의 콜라보도 꾸준히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님을 뵀어요. 저희의 철학에 지지하고 응원해주셨습니다.

공적을 증명할 만한 서류를 좀 받아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난색을 표했다. '저희는 그런 게 없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참 멍청하고 관료주의적인 질문이었다. 이들은 서류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니터에 워드나 한글 따위의 백지를 띄워놓고 병신 같은 미사여구를 쥐어짜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필드에서 뛰고 놀고 춤추는 행동가들이었다.


2. H

이튿날 선릉에서 현장실사를 진행한 H단체는 모든 면에서 L사와 대조적이었다. 불과 1km 남짓 떨어진 두 곳이지만, 강남이라고 다 같은 강남이 아니다. 낡은 오피스텔에 위치한 스무 평 정도의 사무실은 좁고, 덥고, 어수선했다. 직원들의 얼굴은 피곤기가 짙어 그들의 고생과 노고를 짐작케 했다.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소양과 관련하여 국내에는 낯선 개념의 패러다임을 처음 제안하고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는 곳이었다. 정말이지, 돈 냄새가 1도 풍기지가 않는다. 급변하는 환경에 위기의식을 가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결국 이득을 보는 건 이러한 원천 소스를 쥐고 있는 곳일 터인데, 3시간에 걸친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이 곳은 돈 벌 생각이 없다’는 오직 그뿐.

- 네이버 매출이 연 4조원이 넘습니다. 대한민국 IT 업계를 이끄는 공룡이죠. 하지만 지금 그들이 과연 뭘 하고 있죠? 구글처럼 지적생태계를 위해 투자를 하나요? 우리 삶에 긍정적 변화를 위해 노력하나요? 오로지 광고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있단 말이죠. 에릭 슈미트나 마크 주커버그같은 수장들은 사회의 문제의식을 촉구하고 사회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의 IT 수장들은 무얼 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대표는 국내 IT 1세대로서 황금기의 향기롭고도 달콤했던 과실을 배불리 맛보았던 사람이다. 이력 또한 화려하다. 기라성같은 언론사, 기업들의 중역을 역임했다. 그랬던 사람이 대체 어떻게 욕심 대신 가치를 지향하게 되었을까. 지식을 나눈다는 것은, 더 많은 돈 대신 국가 도덕의 진보와 시민의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가. 뜬금없이 이효리가 생각났다. 벌만큼 벌어보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보고 그 모든 절정기를 맞이한 끝에 결국 이전의 세태와 무관한 새로운 경지를 지향했던 그녀와 일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참다운 의미의 공공의 지적 교류를 위한 뿌리를 만들고 싶었던 거다. 깊게 뿌리 내린 곳에서부터 가지와 줄기를 뻗어 무수한 잎새가 열리기를 고대하며 스스로를 자양분으로 희생하려는 자들이다.


3. 딜레마

성격도, 상황도, 인지도도 극과 극인 두 곳의 실사 보고서 작성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한 곳은 무수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업계의 라이징하는 스타인데다, 이미 괄목할 만한 변화와 성과를 거두었다. 부족함 또한 없다. 그들과 연을 맺고자 하는 기업, 단체, 정부기관이 수두룩하다. 한 곳은 사회적 전파는 아직이지만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아래에서부터 단단하게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며, 수상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

상이란 무엇일까. 업적을 달성한 이를 칭찬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상황에 얽매여 발산하지 못한 잠재력을 발굴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것일까? 긍정적 변화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일조하는 측면에서는 후자가 맞을수도, 하지만 이미 검증된 성과를 가속화하는 것 또한 이 상의 역할이 아닐까. 몇 가지 속된 가정도 해본다. 글로벌 시장에서 찬양받고 있는 업체에 상을 줌으로써 상의 권위도 함께 상승하는 그림. 또는 열악환 환경 속에서도 이상의 실현을 위해 묵묵히 스스로를 거름 삼는 이들을 지지함으로서 얻어지는 조직의 대외적 이미지 상승.

알량한 몇 장의 페이퍼로 누구에게 힘을 실어줄 것인지 최소한의 가치판단과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이 보고서가 심사위원들의 판단에 아주 작은 영향력이나마 행사할 수 있다면, 내가 만난 이들이 상과 상금을 받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세상이 아주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면 나 따위의 인간도 조금은 이 사회에 공헌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좀비로 살아야만 한다면, 웜바디스의 R처럼 생각하고 판단하여 가치있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좀비가 되는 편이 나을테니까.




오래된 미래와 나 by 미스터칠리


이틀 전 저녁 서점을 걷다가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이 책은 산업 사회가 촉발하는 문제점,
민족 고유의 지혜를 침범하는 소비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라고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사거나 읽지 않았다.
다만, 제목에 대해서 잠깐 상념에 잠겼다.

'오래된'은 이미 존재한 적 있는 사물이나 관념에 부여하는 형용사다.
미래는 아직 존재한 적 없는 관념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은 다소 충돌하는 표현이다.

이것이 가능한 방법은 하나뿐인데 
누군가 상정한 비전, 앞날에 대한 이상향, 자기의지 내지는 추측을 포함한,
이를테면 '꿈'과 같은 통속적인 표현 대신 활용될 때이다.
그때는 오래되었다는 수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미래는 오래된 미래다.

특정한 꿈을 품었던 적이 있지만 그것을 시도할 용기도,
능력도 없어 그저 아주 오랜시간 품고만 있어 낡을대로 낡아버렸다.

어제 나는 오랜 시간 석화되어가던 종이 한 뭉치를 꺼내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렸다.
스물 셋, 아주 찰나에 품었던 어리석은 환상과도 같은 꿈. 감히 시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안으로만 욕망했던 그 알량한 몇 장의 종이는 나의 오래된 미래였다.

내게는 새로운 미래로 대체할만한 기력과 능력이 있을까.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다.



지구는 둥글다 by 미스터칠리


버티지 못하고 계속 튕겨져 나올 때마다 가속도가 붙은 나는 돌아서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착지했다.
조직으로 조직 바깥으로, 사회로 사회 바깥으로. 아니 다시 한 바퀴 돌아 사회로, 조직으로. 
그렇게 지난 몇 년 간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고통과 자존감의 하락을 자처했다.

세 번째 회사를 도망치듯 퇴사하던 날,
고시원 방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넥타이를 모조리 끄집어 내어 가위로 잘라버렸다.

아울렛에서 산 것, 첫 번째 직장 사수가 선물해준 것, 그리고 엄마가 사준 것.
엄마 미안해요. 저는 이 세계의 보편적 룰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입니다. 병신으로 자라서 죄송해요.

편돌이를 하든 머리 밀고 절에 들어가든 굶어 죽든 다시는 사회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조각 난 천조각을 쓸어담으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후, 
나는 마트에서 다시 9,900원짜리 면접용 넥타이를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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