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가정 by 미스터칠리


항상 지금보다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
현실을 압도하는 비참을 상상하고 종국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며,
긴장하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그래야 이 길고 지긋지긋한 삶을 견디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낙관보다는 망가질 인생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고를 마비시켜야 한다. 그래야 버틴다. 그래야 살 수 있다.

한 줌의 희망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트리는지 너무나 무수하게 목격해왔기때문이다.

지하 환등 극화 소녀춘, 1992 by 미스터칠리



지하소녀 미도리

                             주하림

 
인사해
우리 미도리한테 인사해
헬로우 미도리 와따시노 슈미와 수박데스 미도리
장난치지 말고 인사해
헬로우 미도리 와따시노 슈미와 펑키데스 미도리
너의 옷감에 벚꽃이 그려져 있구나
나의 속살에도 탐스럽게 수놓아졌던 것
머리채를 잡힌 채 네 발로 끌려온 봄; 써커스의 막사
젖은 빨래를 털면 만개한 벚꽃들이 휘날리는 풍경
 
나는 아름다움 끝에 극심한 갈증을 느낀다
그래서 가끔 쇼를 끝내기도 전에 너에게 달려들지
너에게 처음 가르친 말은
당신을 원해요 여기, 여기
 
불구들을 보는 순간 미도리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병 속에 들어가는 난쟁이 사나이는 그것까지도
여정의 한 부분이라며 타이른다
미도리의 펄럭이는 춘화;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불태워도 좋을 즈음
 
저 징그러운 새끼들은 마을에서 쫒아내
빵과 옥수수를 던지던 관객들이
성난 동물들로 변하기 시작한다
불 속을 뛰어드는 개와 몸통이 잘린 코끼리 무너지는 막사
지휘봉을 가진 사회자는 더 무서운 마술도 부릴 줄 아는데......
 
미도리의 신입 인사는
세명의 불구에게 뱀처럼 얽힌 채 끝났다
야 미도리에게도 허리 돌리는 법을 알려줘
당신을 원해요 여기, 여기
 
미도리는 입을 꾹 다물고 벙어리인 척 연기했다
그렇게 삼년,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사회자 겸 조그마한 유리병에 들어가는 사나이에게 먹힌다는 소문과
날마다 늘어가는 귀머거리 연기에 흡족해하던 미도리; 펄럭이는 춘화
 
미도리는 처음 흥분했고
사나이는 웃으면서 그것을 덮어주었고
원한다는 말의 속뜻을 고쳐주려 했을 땐
계절이 훌쩍 지나버렸다
 
미도리는 늙지 않고
갈색 눈자위는 더 선명해졌다
 
가끔 사나이가 다리를 전다
월급을 받지 못한 불구들이 싸움을 일으키고
미도리는 예전보다 조금 밝아졌다
 
안녕 미도리 나는 너의 첫번째 남자
꼬인 팔다리로 치마를 찢고 네 안을 꽉 채운
아니라니?
오 미도리 네가 걸을 때마다 뚝뚝 흘리는 걸 치우느라 멀쩡한 것들까지 엉망으로 꼬였는데!
미도리가 씽긋, 웃었다
 
관객들 비명 소리 식상해 미도리 나는 늙었구나 너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그러나 누군가 너를 가지겠다고 하면 더 늙어빠진 당나귀로 만들버릴 테야 이제 쇼다운 쇼를 할 거야 수고 많았어 돈을 줄게 강을 건너면 네가 태어난 마을이 나와 약속을 정하자 어차피 넌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까 우리 헤어질 장소는 내가 정할게 내가 너의 어디로 가면 될까
 
미도리가 무대 위 만져지지 않는 벚꽃나무를 바라본다
더 끔찍한 마술을 보여줄래요? 당신을 떠나야만 한다면
병 속에 들어간 사나이가 몸을 잔뜩 구부린 채
흐느낀다
 
나는 아름다움 끝에 극심한 갈증을 느낀다
그래서 가끔 쇼를 마치기도 전에 너에게 달려들지
네가 끝내 가로채간 말은
당신을 원해요 여기, 여기

<시와 시 2010년 여름호>




602공작소 로봇 램프 by 미스터칠리




산업용 배관자재를 이용해서 로봇 램프를 만드는 602공작소.

가격은 대부분 15~20만원대.
탐 난다. 애니메이션 NINE이 떠오른다.
먼 미래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기계생명체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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